국악을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국악을 좋아하는데 어떤 곡부터 들어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감상의 길안내를 해주는 책을 소개합니다. 유홍준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를 읽고 우리 문화의 유형문화재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셨다면, 송혜진의 《국악, 이렇게 들어보세요》를 읽고 우리 마음속 무형의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실 겁니다.
국악을 잘 모르시겠다구요?
국악이 어려우시다구요?
저자 송혜진의 글맛 넘치는 《국악, 이렇게 들어보세요》는 그런 선입견을 바람처럼 날려버린답니다. 또 저자는 《장자》에 나오는 말을 빌려 국악 듣는 자세를 이렇게 안내하는군요.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아 보세요.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 보세요.
그런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 보세요.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기껏해야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텅 빈 기氣는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기다립니다”
먼저 ‘마음을 굶기’ 고 ‘기氣로 국악을 호흡’ 하신다면, 그때부터는 ‘국악을 어떻게 들어야하지?’라는 걱정은 안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의 간단한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 목:국악, 이렇게 들어보세요
지은이:송혜진(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국악FM방송 편성제작팀장/음악평론가)
펴낸곳: 다른세상( 733-6813)
쪽 수:328
인 쇄:3도 인쇄
책 내용 중에서
지금 막 국악 듣기에 맛들인 사람들이 몸살나게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가 <산천초목>이다. 강권순의 <산천초목>은 소리 흐름이 양지 쪽을 향할 때는 삶의 기쁨과 사랑 같은 것이, 그 흐름에 그늘이 드리울 때는 슬픔과 비애 같은 것이 가슴을 꽉 채우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음악을 다 듣고 난 뒤에는 생애의 가장 절친한 사람으로부터 위무받은 것 같기에, 조용히 혼자 있을 때, 좀 쓸쓸한 느낌이 들 때면 또 듣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들어본 <산천초목>은 그렇다.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는 ‘소리의 농담濃淡’-강권순의 <산천초목>(본문 80쪽)
가을 강은 적막하다. 차가운 물살 아래 헤엄치는 물고기가 이따금 강의 정적을 깨우지만, 그 냉랭한 소리가 오히려 서늘한 바람처럼 가슴을 친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그 동안 마음 의지할 곳 하나 변변히 마련해 두지 못한 한 노년의 여행자는 가을 강 앞에서 오래오래 서성인다. 돌아다보면 매화꽃 같은 미명美名을 날리던 때도 없지 않았건만 지금 내 귓가엔 젓대 소리만 쟁쟁하다. 덧없다. 짧은 사람의 한평생이여.
-좌절과 사랑을 품은 여행자의 가을노래-김광숙의 <관산융마>(본문 92쪽)
“되돌아들되 끝이 없어라 한다. 끝이 없어도 천년쯤, 만년쯤 되돌아들라 한다.” <천년만세>가 조용히 들려주는 속삭임이다. 이 음악에 맞추어 한나절 끝도 없는 영원의 나들이라도 꿈꾸어볼까. 느리게 걷다가, 조금 잰걸음으로 걷다가, 다시 좀 느리게 속도를 늦춰 걷다가…… 걷고 또 걸으면 끝도 없이 순환하는 사람살이의 이면이 환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음악이 <천년만세>다.
-한국 여인의 알뜰한 ‘손맛’ 같은 ‘음악 맛’-김죽파 명인의 가야금독주 <천년만세>(본문 174쪽)
일반적으로 가야금병창의 첫인상은 성장盛裝한 여인처럼 화사하고, 귀여운 여인의 웃음처럼 명랑하며, 오월의 나무에 돋아나는 새순처럼 싱싱하다. 인생사의 어지간한 애상쯤은 순식간에 걷어낼 가야금병창 특유의 생동감은 국악에 낯선 청중들까지도 그 변화무쌍한 품에 폭 안기도록 하는 친화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가야금병창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연주와 소리를 적절히 안배하여 멋스럽게 다듬어 부르는 가야금병창은 마치 안목 높은 규방 안주인의 살림 솜씨 같은 은은한 윤기를 품고 있다.
-예술가는 자신을 홀로 가둘 줄 알아야지요-윤소인의 가야금병창(본문 127쪽)
이별한 이의 눈물, 타는 가슴. 그것을 합쳐놓으면 꼭 이렇게 윤윤석의 아쟁산조처럼 될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고, 또 가슴 아픈 일이 있어 윤윤석의 아쟁산조가 듣고 싶은 날엔 정말 이 시조에서처럼 촛불이라도 켜보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아쟁산조로는 최초로 취입된 윤윤석의 연주를 음반으로 들었을 때 첫느낌은 너무 자극적이고 강했다. 오동나무 통 위에 걸린 여덟 줄, 윤윤석이 그것을 활로 문질러 연주한 산조 한바탕에서는 삶의 갖가지 풍상을 표출하듯 어둡고 아픈 느낌들이 흘러나왔다.
-윤윤석의 아쟁산조에 담긴 한의 그늘(본문 1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