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한글발음지도 자원봉사하면서 겪은 체험담**
작성자 김 영희
등록일2002.08.14
조회수1402
능력중심 사회 구현 수범사례공모
김 영희

언어장애가 있다는 판단을 받은 등촌사회종합복지관의 방과후 보호실의 별초록반의 초등학교 3학년 정 혜윤을 어제 월요일에 만나고 지금 집에서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 아이 머리를 좋게 해줄까? 하고요....
그 아이는 학교의 담임으로부터 부진아라는 판정을 받은 아이입니다.
또한 담당 복지사가 그 아이를 데리고 언어장애 원을 찾아 진단하였는데 진단비만도 십만 원이 넘는다고 그 아이 엄마가 말해줬죠. 그리고 발음기간 장애아이로 판정이 됐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저는 끈기 있게 훈련하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고 꾸준히 지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진정한 지능과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그의 학교로 전화를 몇 개월 전에 했던 바 있습니다. 용기 내어 앞으로도 해볼 작정이죠.
혜윤은 숫자의 개념을 판단하는 상태가 유치원보다도 못한 상태가 처음 만났을 때라고 깨닫습니다. 그 아이는 10을 100이라고 말하던 아이였습니다.
서로 알려준 전화번호로 혜윤이 내게 전화 걸어와 그의 엄마와도 연결이 되고 통화를 하여 그 애의 신상을 물으니, 애 아빠와는 이혼하여 아빠가 없는 엄마만 있는 아이였고, 유아기인 3세까지 친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이혼 후 자기가 데리고 살면서 직장에 갈 때 애를 집안에 가두고 문을 잠그고 나간 적이 있었다고도 한 불우한 환경에 놓여졌던 곡절 많은 아이임을 알았습니다.
혜윤 엄마는 카드 빚을 갚아야 할 것이 많다고도 했죠. 남에 보증을 서서 남이 안 갚는 것을 대신 갚아주는 일을 하느라 더 어렵다고 가난하다고 했나 봅니다.
직장에서 저녁에 늦게 돌아오기에 어떤 일일까 직장을 물었을 때 말하기를 꺼려했으나 그래도 재차 묻자, 춤추는 무도회에서 서비스를 한다고 했고, 때론 맡길 때가 없어도 데리고 간 적도 있었다고도 했는데 교육적이지 못한 환경이 혜윤의 지능 개발에 계속 도움이 못되는 열악한 곳에 있음을 알고 좀 슬펐습니다.
나는 그 아이의 불행했던 유아 때의 불안과 초조함 들이 부적응현상이란 것을 깨닫고 그의 여러 가지 부산하고, 산만하고, 까불고, 떠들고, 춤추고, 소리지르고, 어지럽게 행동하는 모습을 고쳐줘야지 하고 마음을 정했던 것 같습니다.
혜윤은 어제도 수학적인 셈하기를 하면서 "맞았어요. 맞아요" 를 연속으로 해주면 좋아서 "오~ 예~! "하며 떠들고 목소리를 아주 크게 냅니다. 때론"아---"합니다.
지나치게 소리를 질러서 그만 하라고 말을 해도 안 듣기에 책으로 한 대 때리다가 노여워하기에 준비하고 있는 회초리를 꺼내서 "이것으로 하는 게 기분이 덜 나쁘지?" 하면서 톡톡 때렸습니다. 나쁜 습관이 몸에 배서 다른 곳에서도 버릇없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없게 해주자는 의도에서입니다.

그 아이를 만난 지가 1년하고 6개월 정도 되갑니다. 작년 3월 정도에 만났던 기억입니다. 당시 그 아이는 옷을 조금 적게 입고는 감기 들어서 콧속에 코가 있었던 기억이 나지요. 나는 "옷을 따뜻이 입고 감기에 절대로 걸리면 안 돼! 코가 있으면 말소리가 더 잘 안 되거든!" 하고 자주 말을 해준 적이 기억납니다.
맨 처음 만났을 당시를 회상하니 그 애는 겁먹은 모습으로 저를 따라 왔습니다. 눈으로 흘끗 흘끗 뭔가 쫓기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조금 분위기가 좋으면 이것저것 만지고, 까부는 미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몇 번인가 "저 애는 너무 희망이 없어! 저렇게 산만한 아이를 어떻게 고칠 수가 있을까?" 하는 암담한 생각도 더러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는 조금씩 기억을 하나하나 분명히 해나갔습니다.
하나하나 고쳐질 때마다 아마 나도 기쁘며 나의 지능도 새롭게 향상되는 기분이 들며 그에게 더 좋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 저는 좀 투자를 했습니다.
정 혜윤에게 먹을 것을 준비해 간식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 아이는 까다로워서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아주 구분은 잘하기도 하며 일부러 미운 짓도 합니다. 먹던 부스러기를 땅에 떨어뜨립니다. 분명히 고의로 합니다. 얄미워서 다음에 주지 말까 하다가 서로의 정을 붙이기 위해서 그래도 반년에서 일년 정도는 함께 간식을 먹었습니다.
또 저는 생각하고 행했습니다. 그 아이의 즐거움과 기쁨을 주기 위해서 돈을 줬습니다. 어디선가 공부 잘할 때마다 준다는 것을 본 기억이 아스라이 난 것 같습니다. 그 아이가 유치원 5,6,7세 정도의 다른 아이보다도 숫자 개념이 못한 것을 깨닫고 동전을 주며 헤아리기를 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꿩 먹고 알 먹고 같은 셈이니, 열심히 저와의 만남을 싫다고 안 했습니다.
몇 번인가 "이제 나 그만 나올까? 이제 공부하지 말까?" 하는 말을 던졌을 땐 아마 그 아이는 눈으로 저를 째려보고 큰일이나 난 듯 화를 내며 신경질을 냈습니다. 순간 저는 마음이 약해 저 째려보는 눈은 뭔가 복수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 할 정도였습니다. 아! 대단히 원하는구나! 를 깨닫고 계속하기로 작정했죠.
저는 그런 그 아이가 지능이 매우 정상적인데 지금 같이 된 것은 열악한 스트레스 받는 늑대와 소년 같은 환경에서 자랐음을 깨닫고 계속 조금씩 지도를 했습니다.
숫자를 하나 하나 익혀주는데 초기엔 "여섯과 여덟 열"을 혼동했지요. 참 그 아이는 지금도 유치원용으로 지도를 합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아이의 유치원 유아시절에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인정됩니다. 그런 것을 깨닫고, 저도 유치원선생이 되어 함께 기초를 훈련중이며, 나도 발전을 꾀하고 있다라고 생각도 합니다.
저는 마침 전에 친오빠의 딸의 아이들에게 주려고 사 둔 유치원용의 책이 여러 개 있었고, 또 어떤 집에서 버려진 주워 둔 유치원용의 숫자의 것을 활용도 하였고, 또 얼마 전에는 새로이 사서 이용도 했죠.

문득 처음을 생각합니다. 그 아이가 책가방에서 아무 것도 꺼내지 않고 당당하다는 것에 놀랐을 겁니다. 공부하기 싫다는 그런 상황이죠. 그래도 뭔가 조금씩 하나 하나 찾아보며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으로 접근을 했습니다.
맨 처음에 주변에 있었던 물건들의 이름을 따라하게 했죠. "형광등" 발음을 이상하게 "형간등"으로 합니다. 다시 여러 차례 "형-고오-앙등" 하고 느리게 요즘도 가끔 발음을 고쳐줍니다.
"ㄹ"발음을 제대로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는 그림카드의 "ㄹ"자가 들어간 글자 발음을 하게 했습니다. "헬리곱터 얼룩말 경찰서 리리리 자로 끝나는 말은 항아리 보따리 소쿠리 댑싸리 오리 항아리. 요즘은 새롭게 "ㄹ"받침이 들어간 말로 하기로 작정도 합니다."물 불 일월 칠팔 발 잘 돌 얼굴 거울 살 "
혜윤은 발음 중 받침발음이 모음과의 만남에서 이동(移動)되어 소리냄을 전혀 못합니다. 그 점을 전 아주 이상(異狀)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발음의 이동현상에 대해 무의식으로 하고 있는 터라 하나하나 지도하면서 저도 똑똑히 발음 이동현상인 연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상상도 하는 기회를 더 갖게 되기도 하죠 . 그와의 만남 시간이 오히려 귀한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제도 어려워하는 "ㄱ"받침과 모음인 "오"의 만남을 어려워했습니다. 저는 천천히 발음을 해줬습니다. "백오십 이백오십 삼백오십 사백오십 오백오십 육백오십 칠백오십 팔백오십 구백오십" 발음은 "배고십 이배고십 삼배고십 사배고십 오배고십 육배고십 칠배고십 팔배고십 구배고십" 한 번에 따라 못하고 다시 해달라는 요구에 해줬습니다.
머리가 좋아진다며 시킨 이것은 잘했던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백 구십 팔십 칠십 육십 오십 사십 삼십 이십 십" "천 구백 팔백 칠백 육백 오백 사백 삼백 이백 백" 요즘은 입술소리 "ㅁㅂㅍㅃ"을 하게 하며 "ㅂ"받침은 "ㅁ"으로 바뀌고 "ㅍ"받침은 "ㅂ과 ㅁ"으로 바뀌기도 한다고 일러 줄 참입니다. 그동안 가끔 내가 준비해간 국어 1, 2학년 책을 읽을 때 받침글자에서 해주던 것을 아예 한 번에 떠올릴 수 있는 공식과 같이 해주려는 방법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언제가 그는 중학교에 엄마가 보내 줄 것이라고 말도 했습니다.
사실 그 애가 "더더더 우우우" 하고 첫 마디에서 더듬는 현상을 가끔 보고도 저는 그렇게 자주 떠올리지를 못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 애의 부산하고, 산만하고, 까부는 동작에 신경이 많이 쏠리느라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때론 심하게 말더듬을 하는 아이입니다.
요즘은 많이 훨씬 좋아져서 덜 더듬고 국어 책을 계속 읽으려는 현상을 보입니다.
초기에 노래를 열심히 지도했습니다. 애국가입니다. 곡조가 틀려도 일단은 발음을 고쳐야 하므로 끝까지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9살이라 기억력이 좋은 때라서 반복을 하니 이뤄졌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도 요즘 암기를 합니다. 특정한 곳을 못하고 기억을 못하는 부분은 "무궁한 영광을"입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니 "궁과 광"의 "ㅇ"받침이 잘 안 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형광등"의 "광"자를 못하니 앞으로 꼭 만나면 "영광을 형광등"을 함께 해줘야 함을 깨닫습니다.
"함께"라는 발음을 할 때 눈으로 쳐다보니 "한께"라고 혀끝으로 "ㄴ"발음을 하는 것이 목격되어 그 아이를 입을 자주 보며 발음지도 하는 습관도 더 생겨집니다. 입을 꼭 다물고 "함 암 음-께" 해야지 하고 수 차례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발음기관이 골고루 발달이 안 됐음이 깨달아 집니다. 그러나 1년 간만 더 나하고 발음을 연습한다면 정상인으로 돌아와 언제 그 애가 말더듬 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정혜윤을 학습지도하기 전에 저는 복지관에 방과후 맡겨진 초등학교학생 전체를 돌보는 일을 서너 달하기도 했지만, 그 때 내가 어린이 담당자와 별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많은 아이들 다루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그 어린이 돌보기를 경험했기에 어린이 담당복지사가 정 혜윤을 내게 소개를 하게 된 것입니다.
또 그 등촌 복지관에서 저녁에 주2회를 노인한글지도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터라 쉽게 이뤄졌습니다. 노인한글지도봉사 일도 사실은 서울시내의 스피치학원에서 발표를 3년 간 훈련하였기에 가능합니다. 발표를 하면 자연히 말소리에 관심을 갖고 또 한글발음과 입안의 발음기관도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더 거슬러 올라가면 11년 전부터 한글의 국어자습서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한글의 문법적 지식을 전반적으로 익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한글교실과 정혜윤과 거리는 가까워 혜윤이 수업이 끝나면 노인교실도 처음엔 갔었고, 지금은 멀리서 들여다보다가 그냥 도망가버립니다. 어쩌다 혜윤과 노인들이 마주쳤을 때 부 반장 되는 씩씩한 노인학생이 "애! 너 얼마나 배웠니? 너 선생님을 엄마라고 해라!" 하며 아이에게 곤란한 물음을 던집니다. 아이는 황당한 표정을 짓곤 합니다. 나는 노인들에게 "그 아이를 보면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그 아이는 지금 마음이 불안해서 공부가 잘 안 되는 상황인데 그런 이런 말을 하면 애가 더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되고 할머니들을 싫어해요." 라고 말을 하기도 해서 삼가는 편이죠.
어제도 복지관 경비가 혜윤을 잘못했다는 듯이 야단치듯 "너 왜? 인사를 먼저 안 하냐"고 혼내듯 말합니다. 사실 아직 그 경비 님과 저도 서먹한 사이라서 이런 저런 말을 안 했습니다. 혜윤에게 야단치듯 말을 삼가 해달라고 말할 참입니다. 애가 뭔가 잘못했을 때에만 직접 말을 부드럽게 해달라고 할 참입니다.
또한 혜윤과 함께 공부하는 장소인 행복에 전화교실 방의 상담자도 혜윤에게 얼굴을 꼬집듯이 "너~ "하며 말한 적이 생각나며, 안 좋은 현상에 일이다란 느낌이죠.
정혜윤은 확실히 주변 사람들로부터 귀염을 못 받는 그런 환경에 처해있음을 새삼 깨달으면서 혜윤이가 더 활발하게 씩씩하게 똑똑한 발음으로 말을 하며 정상인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려면 아직도 뭔가 더 좋은 온화한 분위기로 만들어 줘야한다는 생각으로
특별히 주변 분위기에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 함께 가게에서 먹거리를 사먹기도 합니다. 어제도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데 그는 이것저것 고르는 시간을 한참 가지다가 선택을 합니다. 전에는 나와 똑같은 것을 골라줬는데 어제 내버려둬 그가 집은 새로운 것은 가격이 좀 싼 것인데 먹다가 땅에 떨어뜨려서 나는 주워서 바닥에 닿은 부분은 버리고 먹게 했는데 싫다며 안 먹고 내 것을 줘도 먹다가 안 먹고 새로 사달라고 했어요. 나는 "내가 너의 엄마니?" 하면서 "다음에 먹을 때는 그것을 사먹지 않으면 돼!" 하면서 사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뜻은 원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죠.
혜윤은 둘만의 공부시간에 조금 자유로운 분위기면 책상위도 올라가고, 아주 3살짜리아기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안 돼! 너 버릇부터 고쳐야겠다."하면서 회초리를 준비해 때려 나쁜 버릇을 고쳐주려 합니다. 너무 세계 때리면 화를 내어서 살살 때립니다. 저는 그 애 화내는 모습이 싫습니다. 혜윤은 매를 맞으면서 "안 아파! 안 아파!"하며 깔깔 웃기도 잘합니다.
책읽기에서 반드시 잘했을 때 계속 "맞아! 맞았어! 그래! 오! 잘했어!" 하고 칭찬을 듬뿍해서 맞다 틀리다 를 확인시켜주려고 의식을 두어 표현해줍니다.
그 아이의 인간관계와 원만한 사회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고맙습니다. 가르쳐주셔서. 선생님." 처음엔 먼저 "선생님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지도하다가 도치법으로 정했습니다. 우선 다른 선생들로부터 귀여움을 받게 하자는 생각에서입니다.
때론 간식을 사러 가게에 걸어가면서 길거리에 글자들을 따라하게 하기도 합니다. 가만히 헤아려보니 둘이서는 하다가 남들 앞에서는 멈추어버립니다. 남들이 알고 뭐라고 한마디 할 것을 미리 짐작하는 영리한 아이입니다.
혜윤에게 동전으로 수를 헤아리고 잘했다는 뜻으로 돈을 초기에 줬습니다. 그러다 보니 습관이 되어 항상 돈을 주려니 하는 상태가 될 무렵 그 애의 진정한 사고력을 위해서는 돈을 안 줘도 고맙다란 개념을 심어줘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돈을 안 줬습니다. 그랬더니 처음엔"돈- "하고 여러 번 조르더니 지금은 안 주는 사람으로 정해졌고, 이제 숫자도 쉬운 것은 잘 하기에 기뻤습니다. 또한 마침 "지능개발시간" 책을 전에 사 둔 것이 있어 머지 않아 시간을 척척 말할 날을 기대해봅니다. 아직 시간을 모릅니다.
수의 두 자리 5이상의 합의 계산을 아직 척척 못합니다. 알맞은 낮은 자리숫자로 계산식을 만들어 빠르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그 애는 구구단은 순서적으로 척척 외웁니다. 그러나 중간에서 물으면 막힙니다. 모처럼 외운 구구단도 기초인 더하기 빼기를 못하면 도로 잊어버리겠다 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2002년 8월 13일 화요일 pm5 ; 13 한국방송통신대학 국문과 김 영희










203.241.118.106 한말연구: 좋은 글 감사합니다. 훌륭한 우리말 선생님이 되실 분 같습니다. [08/14-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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