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烏斯含
작성자 백산
등록일2006.11.15
조회수4108
烏斯含

猪足縣 一云 烏斯廻 [삼국사기 권 37]
猪守峴縣 一云 烏生波衣 一云 猪守 [삼국사기 권 37]
兎山郡 本高句麗 烏斯含達縣 [삼국사기 권35]

猪는 돼지인데 차음표기 烏斯는 중세어 돋과 초성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중세어 톳기에 해당하는 烏斯含 역시 초성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혹자는 烏는鳥의 오자이거나 당시에는 烏는 鳥의 이표기자로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 우선 烏斯含은 일본어 うさぎ와 음상이 일치한다. 톳기의 토는 한자어 兎에 해당되어 혹시 톳기는 한자어 토+고유어osgi의 합성어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돋도 猪+烏斯의 합성어일까? 猪의 재구음은 ʈɨə>ʈiə/ʈyə>tʐ이다. 즉 뎌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는 합당한 추정이 아니다. 고슴도치라는 음상에 고유어로 돼지는 도시로 발음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톳기는 원 발음이 돗기인데 한자음 토와 연관해서 톳기로 정착한 듯하다. 이로써 보면 돗기=烏斯含, 도시=烏斯, 닷=于次가 대응됨을 알 수 있다. 우선 于의 음운 변화를 추적해보자. 于음은 성모가 云母로서 상고에는 유성小舌音 G로 알려져 있다. G의 무성음은 q(알타이제어에서 k는 전설모음뒤에 q는 후설모음 뒤에서 발음되는 상보적 분포를 가졌다)이다. 흉노의 대왕에 대한 칭호 禪于가 前漢書에 실려 있다. 禪于의 禪자에서 그 형성자가 單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漢代에는 禪이 단으로 읽혔음을 알 수 있다. 于자는 Gwa로 재구된다. 즉 선우가 표사하고자 했던 음상은 단구이다. ㄴ을 덧붙이면 단군이 됨을 알 수 있다. 알타이제어에서 어미 ㄴ은 수의적으로 붙는다. 이렇듯 단군이란 칭호는 북방민족의 보다 오래된 대왕이나 제사장에 대한 칭호로서 널리 사용되었음을 여기서도 알겠다. 여하튼 于는 後漢代에 Gwa에서 ɦuə로 변하였고 隨代에는 ɦ가 탈락한다. 여기서 삼국시대 고구려의 한자음 형성시기를 따져 보자. 이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이 정치음인데 魏時代까지는 tj계열이었고 이 이후 ʨ로 변하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백제 오음에서도 그리고 신라의 6세기대 표기에서도 우리는 정치음이 ㄷ계열로 수용되고 있음을 위에서 확인했다. 고구려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현재 추적할 수 있는 자료로는 한반도에 형성된 한자음은 낙랑지역으로부터 정립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대개 서기 2세기대의 한자음을 가정할 수 있지만 이 지역이 보수적이었을 것으로 가정하면 云母은 Gw로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于의 독음은 Gwa에 가까웠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烏는 影母로 云母처럼 G로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烏는 거성이다. 거성은 고구려 한자음 형성 시에 -s 운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烏는 GVdV를 음사한 것이다. 그래서 후대에 烏斯含은 GVdVsigi > ㅎ도ㅅ기 > 톳기로 변하게 되고 烏斯는 GVdVsi > dVsiG > 돋, 돝, 도치 로 반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영모와 운모를 G로 해석하고 거성 운미를 고려해야만 그 동안의 모든 의문점은 한 점 의혹 없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거성운미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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