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말 진영의 어떤 사람들은 국어사전에 등록된 단어의 약 70%가 한자어인 상황을 한심하게 여기며 그 탓을 우리 먼 조상의 몰지각 내지 사대주의 성향으로 돌린다. 한자사용이 부끄러울 이유가 없었던 시절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은 억울하다. 사실 70%의 상당부분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가 현대어에서 자주 사용하는 한자어의 대부분은 우리의 먼 조상과는 무관하다. 순수한 우리말에 대한 사랑을 외치는 국어학자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무수하게 많은 한자어들이 우리말에 편입되었다. 한자어의 세력확장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보다 근대에 들어 더 심각한 듯하다.
물론 일본식민지 시절의 식민정책과 주로 일본인이었던 학교선생들의 영향이 국어학자들의 노력을 무력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어떠하였는가? 학교선생을 포함하여 일본인들은 모두 물러가고 한글전용정책이 채택되었지만, 한자어의 비중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이번에는 한자어에 가세하여 영어 어휘가 질풍노도와 같이 우리말의 영토를 휘저으며 좌석을 점령하고 있다. 왜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토박이말 진영의 주장에 의하면, 이번에는 다수를 차지하는 국민들의 무관심이나 사대주의나 속물근성이 문제이다. 죽은 조상을 탓하는 것은 그래도 덜 위험하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을 탓하는 데에는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충분한 근거자료를 확보하고, 그 후에도 필요한 만큼만 매우 신중히 주장하여야 한다. 마음상하지 않고 수긍하게.
토박이말 진영은 토박이말이 고전하는 이유를 전적으로 자체 내에서 찾아야 한다. 토박이말의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달리 없으므로. 상대방이 강하거나 여건이 나빠서 싸움에 진다고 생각하면 이길 길이 없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졌다고 생각하면 강해지는 방법을 찾으려는 생각이 들게 되고 희망의 불씨를 찾을 가능성이라도 있는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의 창달을 위하여 애쓰고 있는 토박이말 진영에 무엇이 문제인가? 쓴 소리는 환영받지 못함을 뻔히 알면서도, 감히 주장하여 본다.
첫째, 나태하다.
언어는 습관이다. 어떤 면에서 언어에는 민주주의가 잘 구현되어 있다. 많은 사람의 입에 밴 말을 버리게 하는 것은 어렵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한자어나 외래어가 정착된 후에나 이를 순화한다고 토박이말을 만들어 제시하면 환영받을 수 없다. 토박이말에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이 소수인 현실에서 "이 낱말은 우리의 조상이 쓰던 말을 갈고 다듬어 만든 말이니 지금까지 쓰던 말을 버리고 이 말을 써보자. 예쁘지 않으냐?"한들 감동을 줄 수 없다. 특히 이미 귀에 익고 짧은 한자어에 대항하여 긴 토박이말을 들이댄다면 찬밥신세를 면하기 힘들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언어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한가지 효과적인 방법은 선수를 치는 것이다. 한자어나 외래어가 사람들의 입에 배기 전에 적절한 토박이말을 내어놓는다면 수용될 가능성이 한결 높아질 것이다.
둘째, 세(勢)를 불리려는 노력이 부족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하다.
사실, "나태하다"라는 도발적인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 말을 거둬들이는 것은 아님.) 나태하지 않아도, 진영의 세력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수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한자어나 외래어의 침입을 감시할 눈이 있겠는가.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 진보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문물을 모두 우리가 창안할 수는 없다. 우리가 쫓아가는 처지에 있고,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교류가 활발한 현대세계에서 우리는 많은 문물을 외국으로부터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에게 해당 어휘가 없는 문물을 도입할 때 우리는 선택해야한다. 외래어를 차용하던가 번역어를 만들어내던가.
외래어의 차용은 가장 수월하다. 사용자는 새 말을 만들 책임이 없고, 만들더라도 남이 그 뜻을 정확히 알아들을지 자신할 수 없다. 특히 해당 전문분야에서는 그 외래어의 의미를 아는 전문가들이 이미 많기 때문에 외래어가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단어이다. 속물근성이 있을 수도 있고 이국적이거나 생소한 것에서 참신함을 느낄 수도 있다. 속물이 아닌 사람이 어데 있는가? 현대에 들어서서 우리에게 문화전달의 교량역할을 하는 일본인을 포함하여, 한자를 가지고 번역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토박이말보다 한자어가 먼저 생겨나곤 한다.
각 분야에 토박이말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이 적다면, 토박이말 진영은 새 어휘의 등장을 감지하지 못하고 그것이 국민들의 습관에 뿌리를 내릴 때까지 시간을 놓치게 된다. 세력의 부족이 토박이말 진영의 큰 약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토박이말을 사랑하도록 설득하여 세를 불려야 한다.
물론 이 설득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자기가 한자어를 편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지만, 한자어 없이는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한자가 나쁘다는 말에 시큰둥하다. 외래어의 남용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외래어 남용자를 매국노나 사대주의자로까지 표현하는 사람을 토박이말 광신도쯤으로 볼지 모른다. 토박이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적은 현실에서 다른 태도의 사람을 매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토박이말에 해를 미치는 것이다. 설득과 홍보만이 취할 행동이다.
그런데 토박이말 애용의 당위성으로 내놓은 이유들에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필자가 이러한 이유를 제시한 글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고(누구도 그럴 수는 없다) 읽은 내용을 그대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요지는 이렇다.
"토박이말이 진정으로 우리의 말이고 매우 아름답다. 우리 고유의 말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다. 자기의 것을, 특히 자기의 말을 소홀히 하며 잘되는 나라 못 보았다."
물론 이보다 더 다양한 이유가 제시되었고, 사람마다 강조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앞의 표현이 모든 토박이말 옹호 주장을 잘 대표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장되었느냐가 아니고 들은 사람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이다.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바와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 제시하였다.
그런데 토박이말 진영의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이 자신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듣는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자.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는 토박이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건데, 토박이말이 아름답다고 누가 그랬는가? 고슴도치에게도 제 새끼는 예쁘듯이 토박이말 애호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군. 내가 보기에는 토박이말에도 좋은 말들이 있지만, 한자어에도 아름답고 씹을수록 깊이를 느끼게 하는 주옥같은 말들이 많던데. 영어에도 발음이 정말 편하고 아름다운 단어가 많던데. 국제특허 없는 어휘쯤 자유롭게 갖다 써도 뭐 그리 대수인가? 나는 한자어도 즐겨 쓰고 가끔은 외래어도 쓰지만 그래도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데. 독일어가 라틴어를 정비하여 자기의 고유어를 많이 부활시켰다고 들었는데 그거 독일사람들이 프랑스에 대해 한참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시절에 했던 짓 아닌가. 그것 때문에 독일사람들이 더 존경스럽게 보이지는 않던데. 영어는 게걸스럽게 외래어를 받아들여 지금의 어휘를 갖추었지만 미국은 잘만 나가고 있는데. 참 납득하기 어려운 소리를 하네. 허기야 우리말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말이니 결사 반대할 이유야 없지. 허지만 지금 쓰는 말이 어때서?"
토박이말 진영의 주장은 솔직히 공허하게 들린다. 색이 바랜 광고판을 보는 듯하다. 토박이말의 애용을 애국심과 결부시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애국심으로 호소하는 것은 의미 없다. 토박이말의 애용으로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효율이 향상되고 표현가능영역이 증가될 수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여주면 좋겠다.
셋째, 토박이말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한자어나 외래어와의 싸움에서 토박이말이 밀리고 있다고 말하면서, 어휘 사용자인 국민들만 탓하고 있다. 상품이 팔리지 않는 이유를 고객의 탓으로만 돌리면 그 상품은 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원인을 상품에서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 언어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잘 팔리지 않는 것은 토박이말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토박이말의 문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토박이말의 조어력이 한자어의 것에 비하여 크게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오랫동안 외면 당하는 동안 많은 고유어가 소실되었다. 그 결과, 토박이말에는 합성어나 파생어의 밑감으로 쓰일 수 있는 기본단어가 없는 경우가 많다. 기본단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새 단어의 생산이 어렵다. 만들지 못하면 팔 수 없다. 둘째로, 고유어로 합성된 단어가 대체로 길다. 짧은 단어가 이미 사용되고 있으면, 의미는 같고 길이만 긴 단어는 발을 붙이기 힘들다.
토박이말 진영은 잘 팔릴 수 있는 토박이말을 만들기 위하여 토박이말의 조어력을 크게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기본어휘를 개발하고, 짧은 합성어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토박이말의 어휘합성규칙에 개선하는 외에는 방안이 없다고 생각된다. 기존의 방법과 어휘만을 이용하는 노력은 지금까지의 부진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경고하고 싶다.
<글을 마치고>
좀 더 주목을 받기 위해 공손한 제목보다는 도전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제삼자의 시각에서 썼습니다. 양해를 바라며, 좋은 뜻만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토박이말을 애용하여야 하는 이유와 조어력 개선방안에 대하여 생각한 것이 많지만, 다음에 정리되는 대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 이 글은 디지털조선일보의 기자클럽>통달인클럽>우리말통에 실은 글을 다시 올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