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전용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에서 고유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국어순화운동이 전개되고, 여러 전문분야에서 우리 고유어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결과가 일반대중에게 잘 수용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한자어에 가세하여 영어 어휘가 물밀 듯이 들어와 자기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상품이 팔리지 않는 이유를 고객의 탓으로만 돌리면 그 상품은 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상품을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언어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한자나 외래어를 즐겨 사용하는 사람도 우리말의 사용자이며 우리말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문서에서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책망하고, 외래어를 남용하는 사람들을 사대주의자나 몰지각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행동은 감성적인 대응이어서 상대방의 반감을 자아낼 뿐이다. 이러한 행동은 그들이 우리 고유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개종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유어에 무관심한 사람이 다수인 현실에서 취할 바가 아니다. 그 보다는 우리의 문자생활에서 한자가 뿌리뽑히지 않는 원인을 찾아내어 그 원인을 제거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말이 외래어의 침투를 이겨내지 못하고 너무 많은 좌석을 빼앗기는 이유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우리가 문자생활에서 한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국어가 한자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다. 특히 고유한 우리말의(이하 "고유어"라 함)의 혁신적인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한자가 자주 사용되는 이유>
우리말에서 압도적인 비중을(약 70%라 한다.) 차지하는 한자어가 한글로 표기되어서는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경우는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1) 그 단어와 한글표기는 똑같지만 의미가 다른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있거나, 2) 새로 만들어진 단어이거나, 3) 자주 사용되지 않는 단어인 경우이다.
<동음이의어 문제> 대화에서는 동음이의어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상대방에게서 혼동이 감지되면 설명을 보태거나 다른 단어로 중복하여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는 천천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맥락을 통하여 동음이의어의 의미를 분간해 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러나, 문서에서는 저자와 독자가 대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독서는 대화보다 빠르게 진행된다. 이러한 이유로 동음이의어가 문서에서는 문제를 일으킨다. 문서에서도 동음이의어는 대부분 문맥을 통하여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동음이의어의 의미가 앞에 나온 말을 통하여 분명해지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뒤에 따라오는 말을 보아야 의미가 분명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우에는 불분명한 부분을 의미가 분명해 질 때까지 기억하고 가던가, 독서 도중에 읽기를 반복하여야 한다. 동음이의어의 의미를 확정하기 위한, 이러한 분석은 독서의 능률과 즐거움을 떨어뜨린다. 독자가 한자를 읽을 수 있다면, 한자표기는 이러한 추가적인 분석을 불필요하게 한다. 정확한 의미전달을 우선하는 저자는 한자병기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새 한자어 문제> 한자로 만들어진 새 단어는 한자로 표기되지 않으면 만든 사람의 의도가 전달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새 단어가 두 개 이상의 의미를 결합한 합성어이면서 그 구성원소의 의미가 분명하게 들어 나는 경우는 예외이겠지만, 이러한 단어는 음절수가 많은 단어들이다. 보통 2음절의 짧은 한자어가 새로 소개될 때는 한글표기로부터 그 의미를 유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주 사용되지 않는 한자어 문제> 우리가 많은 한자어를 모두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개수로 보면 국어사전에 있는 단어의 대부분이 극히 드물게 사용된다. 문장에 이러한 단어를 쓰려고 할 때 저자는 의미전달이 정확히 될지 자신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단어들도 상당히 많은 경우에 동음이의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불안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자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방안>
국어가 한자로부터 독립하려면, 한글로만 표기된 글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는 어휘집합을 가져야 한다. 매우 중요한 것은 동음이의어를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한자표기와는 전혀 무관한 고유어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한자 추방의 지름길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한다.
방향 1. 한자어를 만들 때, 개별 한자의 의미보다는 단어 전체의 발음을 우선함으로써 동음이의어의 생산을 막는다.
방향 2. 한자 없이도 새 단어를 만들 수 있도록 순수한 우리말의 조어력을 부활시킨다.
방향 1. 발음 우선 원칙에 대하여
입으로 말해졌을 때 구분될 수 없는 단어는 잘못 만들어진 단어이다. 우리는 의사소통을 위하여 쓰고 읽기보다는 오히려 말하고 듣기에 더 의존한다. 그러므로 동음이의어를 만드는 것은 국어에 대해 무책임한 행동이다.
단어란 개념을 음성의 연속으로 기호화한 것에 불과하다. 한자(漢字)는 글자를 읽는 방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자어는 한자를 매개로 하여 개념과 음성사이의 대응관계를 결정한 단어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한자어를 만들 때, 표현하려는 개념과 가장 가까운 의미를 가진 한자의 조합을 선정하는 데에 몰두한 나머지 만들어진 단어의 발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자의 발음이 500개미만으로 제한되어 있는 현실에서 발음을 무시하면서 2개의 한자로 새 단어를 만들어 내는 조어습관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너무 많은 동음이의어가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동음이의어는 계속 누적될 것으로 보인다. 한자의 의미만을 고려하면서 동음이의어의 생산을 불사하는 습관은 한자만 썼던 우리의 지식인 조상에게나 한자를 도저히 상용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인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표기에서 한자를 배제하려고 하는 우리에게는 치명적으로 해로운 습관이다. 우리는 이 습관을 버림은 물론 이 습관으로 인해 이미 태어난 동음이의어들을 정비하여야만 한자표기가 필요 없는 어휘를 가질 수 있다.
사실 우리가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하더라도, 그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 각각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이 점은 현대국어에서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기본 한자어들이 증명하고 있다. 사람들의 막연한 인식과는 달리, 한자어에서 기본어휘의 의미는 그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의 의미로부터 쉽게 도출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economy, society, science, philosophy를 의미하는 경제(經濟), 사회(社會), 과학(科學), 철학(哲學)은 각각의 한자를 알더라도 단어의 의미를 유추할 수 없다. 별도로 설명을 듣지 않으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 국가(國家)에서 가(家)는 단순히 두 음절을 만들기 위하여 쓸데없이 덧붙인 것으로서 그 의미는 무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國家)는 "나라"가 아니라 "정부청사"나 "청와대"를 의미하여야 자연스럽다. 생산(生産)의 의미는 한자의 뜻으로 볼 때 production보다는 옛말의 의미인 "애낳기"에 더 가깝다. school을 의미하는 학교(學校)에서 교(校)자가 당(堂), 원(院), 관(館), 가(家), 소(所), 장(場), 지(地) 등의 글자보다 이 단어에 의미상으로 더 적합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 한자어를 구성하는 한자는 그 단어가 처음 소개될 때 설득력을 제공하는 역할만 할뿐이다. 일단 우리가 받아들인 한자어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그 단어에 어떤 한자가 사용되었는지 알기 때문이 아니다. 단어 전체의 의미를 통째로 외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한자어를 말하거나 들을 때 그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를 음미하지 않는다. 그러면 오히려 의사소통이 느려질 뿐이다. 우리가 한자어에 어떤 글자가 쓰였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표기하려고 할 때뿐이다. 이 때에도 구성 한자가 의미상으로 잘 선정되었기 때문에 잘 생각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은 읽을 때에도 개별 한자의 의미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물론 한자를 통하여 단어의 의미가 수월하게 유추될 수 있는 한자어들도 있다. 예컨대, 국가(國歌)라는 단어는 한자로부터 그 의미가 잘 도출된다. 이러한 짧은 단어들은 한자의 편리성을 입증하는 예로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그 길이가 짧기는 하지만 기본단어라 할 수 없고 국(國)+가(歌)라는 복합어라고 보아야 한다. (이 글에서 "기본단어"란 단순히 다른 단어를 조립할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 혹은 의미소를 의미하기로 한다. 기본단어 자체도 파생어일 수는 있다) 국가(國歌)라는 말을 이용하여 합성될 수 있는 단어는 별로 없다. 그리고 국가(國歌)는 사용빈도가 매우 낮은 단어이다. 국가(國歌)는 예컨대 국가가(國家歌)나 "나랏노래"나 "나라놀"에 비하여 짧기 때문에 좋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자주 사용되지도 않는 단어인 국가(國歌)가 자주 사용되는 국가(國家)와 동일한 소리를 차지함으로써 한글표기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국가(國歌)와 같이 자체적으로는 효율적인 듯하면서 실은 언어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종류의 단어는 개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음이의어의 추가적인 발생을 막기 위하여, 우리는 새 개념을 나타내는 한자어를 만들 때 어느 한자의 결합이 의미상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더라도 그 발음이 기존 단어의 발음과 충돌한다면 마땅히 포기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표기에 한자를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자의 많은 가짓수 때문에 문제없는 대안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어의 음절수를 늘이면 발음충돌을 피하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물론 단어의 음절수가 많은 것은 경제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 단어의 음절수를 정할 때 예상되는 사용빈도를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사용빈도가 높은 단어는 짧게, 사용빈도가 낮은 단어는 길게 한다. 그러면 자주 사용되지 않는 수많은 단어들이 길어져도, 일상의 문장에 나타나는 단어의 평균길이는 크게 길어지지 않는다. 예상되는 사용빈도를 고려하지 않고 거의 모든 단어를 두 음절로 만드는 습관은 꼭 지켜져야 할 것이 아니다.
방향 2; 고유어의 조어력 활성화에 대하여
고유어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누구에게나 오래된 자기의 것은 소중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고유어의 조어방식을 조금만 개선하면 한자보다 훨씬 배우기 쉽고, 생산성이 높고, 듣기에 부드러운 어휘를 만들어내는 조어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실용적 입장에서 보면, 둘째 이유가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국어의 어휘생산 현장에서 고유어가 한자어에게 밀려난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한자어가 먼저 존재하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고유어의 조어력이 한자어의 조어력을 능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자어의 선점(先占) 문제>
우리의 조상은 중국에서 많은 문물을 받아들였고 근대에는 일본을 통하여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문물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한자에 능한 우리의 지식인 조상들은 한자로 이미 만들어져 있는 중국어나 일본어 어휘를 가져다가 발음만 우리 식으로 바꾸어 우리의 어휘에 편입시켰다. 부끄럽지 않은 불로소득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조어력의 경쟁 문제>
사실, 한자의 강력한 조어력(造語力)은 매우 유혹적이다. 한자는, 한 글자가 한 음절로 읽히면서 독자적으로 하나의 의미를 나타낸다. 다양한 의미의 글자가 모두 있다. 없으면 새 글자를 만드는 것도 쉽다. 그리고 한 글자의 문법적 기능이 필요에 따라 명사, 동사, 부사, 형용사로 유연성 있게 변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복합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적절하다고 인정될 수 있는 한자의 순열을 찾는 것이 쉽다. 보통 2개의 한자만으로 그럴듯한 새 어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면 고유어의 조어력에는 무엇이 문제인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고유어에는 단어 합성의 재료로 쓰일 수 있는 기본단어가 부족하고, 둘째는 고유어로 합성된 단어가 대체로 길어진다. 의사전달의 효율은 같은 뜻을 짧게 표현하는 것이다. 짧은 단어가 이미 사용되고 있으면, 의미는 같고 길이만 긴 단어는 발을 붙이기 힘들다.
<해결 방안>
그러므로 우리말 어휘의 생산에서 고유어가 담당하는 역할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족한 기본 단어를 보충하고, 짧게 합성어를 만들 수 있는 원리를 찾아야 한다. 지금도 해외로부터 많은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한자어(혹은 외래어)가 국내에 정착하기 전에 먼저 고유어를 만들어 보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유어가 다소 길더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짧은 새 단어를 만드는 방법들을 검토하여 보자.
1) 접두사, 접미사를 사용한다.
짧으면서도 유연한 접두사와 접미사를 사용하면, 음절수를 적게 추가하면서 새 단어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서 유연하다 함은 한 가지 소리의 의미가 상황에 맞추어 다양하게 변하면서도 별 혼동을 일으키지 않음을 의미한다.
접두사의 예; 개-, 나(내)-, 들이-, 엿-, 짓- 치-, 휘-, 앞-, 뒷-, 웃-, 외-, 시-, ...
접미사의 예; -나다, -니다, -지다, -롭다, -브다, -치다, -추다, -키다, -히다, ...
(접두사인지 명사인지 모호한 경우도 있으나 분류문제는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으려 함)
2) 생략한다.
혼동의 여지가 없으면 어휘의 뒷부분이나 중간의 일부를 생략하는 방법이다.
예; 새각시> 새갓> 새앗> 시앗(첩); 아버지+님 > 아버님; 배고개 > 배오개(지명이름); 강이 > 가이 > 개; ...
3) 변형시킨다.
단어의 일부를 약간 변형시켜 의미가 상당히 다른 단어를 만드는 것이다.
예; 낮다 - 나리다; 눋다 - 누르다 - 누렇다; 늦다 - 느리다; 머물다 - 멈추다; 까다 - 깨다; 벌다 - (버이다>)베다, 떨다 -떼다 - 털다, 닫다-다리; 걷다-거리; 바르다 - 반듯하다; 쪽 - 짝; 적다 - (족다>조금?) - 졸다 - 졸이다; 작다 - 잘다 -자르다, ..
4) 단어의 의미를 확장한다.
의미의 확장은 새 단어를 만들 필요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예; "가다"의 의미: 먼 위치로 이동하다 > 사라지다 > 없어지다 > 죽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유어는 효과적으로 새 단어를 만드는 방법을 모두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보기를 확장하려고 할 때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각 방법이 활발히 사용되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한자어의 주도적인 역할 하에서, 고유어의 생산기능이 심각하게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고유어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조어방식을 부활하는 것은 고유어의 조어력을 강화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고유어의 조어력 활성화 방안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제안한다.
** 예전에 우리말에서 사용되던 생략과 변형 방법을 활성화하여, 합성어의 음절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단어 합성규칙을 바꾼다.
** 접두사, 접미사, 기본단어를 개발한다.
1.. 단어 합성규칙의 개선에 대하여
합성으로 새 단어를 만들 때 구성 의미소들이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사이 "ㅅ"을 첨가하는 방식으로는 합성어가 짧아질 수 없다. 생략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어휘의 생산에서 합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품사전환이다. 음절이나 음소의 추가가 적은 방식으로 품사전환이 가능하다면 언어의 효율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몇 가지 규칙을 고려해 본다.
* 두 단어가 결합할 때, 앞 의미소의 끝에 오는 종성은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지 않는 한 생략한다. 필요하면 음절 단위의 생략도 한다.
* 합성할 때 모음과 모음이 만나면 하나를 생략한다. (여기에서는 전후 사이의 생략 순위를 정하거나 모음 사이의 생략순위를 정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예; 가늘다+오라 > 가느+오라> 가노라; 섬유(纖維) /타다(영향을 받다, 느끼다)+오라 > 타+오라 >토라; 신경(神經) ("신경"은 감각을 전달하는 오라(줄) 모양의 세포임. 그리고 많은 파생어를 낼 것으로 예상되므로 짧아야 함)
* 동사나 형용사를 명사로 만들 때, "-ㅁ", -기"를 덧붙이는 기존의 방법 외에, 동사의 원형이 3음절 이상의 합성어이면 단순히 동사어미 "다"를 제거하여 명사로 쓰는 방안을 병용한다. "다"를 제거한 후의 최종음절에 받침(자음)이 있으며 그 발음이 불편할 경우 (원칙적으로) 그 자음도 생략한다.
2. 접미사 개발의 예
접미사의 사용으로 다양한 품사전환과 의미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예컨대, -하게 하다, -화하다, -적(的)이다, -할 수 있다, -스럽게 하다, -하게 행동하다, -하게 말하다, -하게 표현하다, -하게 기록하다, -이 없다, -이 많다, -을 좋아하다, -을 무서워하다, -을 혐오하다, -하는 사람, -하는 주체, -하여 놓은 것, -하는 장소, -하는 집, -하는 방, -하는 때 등을 나타내는 짧은 접미사가 있으면 매우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니다"와 "-키다"의 예를 제시한다.
* "-니다"의 예
옛말인 우니다, 도니다, 노니다, 다니다(현대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니다"는 반복 혹은 지속의 의미를 갖는 접미사로 볼 수 있다. 즉,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우니다= 울다+니다 =계속하여 울다, 울며 다니다.
도니다= 돌다+니다 = 계속하여 돌다, 돌아 다니다.
노니다= 놀다+니다 = 계속하여 놀다, 마냥 놀다, 놀며 지내다
다니다= 닫다+니다 = 계속하여 닫다(가다), 이리 저리 가다, 왕복하다
그런데 짧으면서도 다른 음절과 부딪칠 때 발음하기 편리한 "-니다"의 의미를 지속이나 반복의 의미에 국한시키는 것은 낭비이다. "-니다"를 "-다니다"의 줄임으로 보면 "-하며 다니다" 혹은 "-하며 가다"로 사용할 수 있고, 지속의 의미는 "-하게 지내다, -하게 행동하다, -하게 살다"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앞에 동사의 뿌리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명사, 형용사, 부사의 의미를 갖는 다양한 의미소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세니다 (세다+니다>); (세기를 반복한다는 의미에서) 셈하다, 계산하다 (세니; 계산)
보니다 (보다+니다>); 구경하다, 관람하다 (보니; 관람, 보니움; 관람관)
타니다 (타다+니다>); 타고 다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다 (타니; 교통, 타니란; 교통란)
파니다 (파다+니다>); (계속하여 파다의 뜻에서) 탐구하다, 연구하다. (파니; 연구)
베니다 (베다+니다>); (베고 또 베다>) 해부하다 (베니; 해부, 베니칼; 해부용 칼, 메스)
까니다 (까다+니다>); (계속하여 까다>) 비난하다 (까니; 비난, 까니지다; 비난적이다)
하니다 (하다+니다>); (하다의 반복) 활동하다 (하니; 활동, 하니지다; 활동적이다)
구니다 (굴다+니다>); 처신하다 (구니; 처신, 몸가짐)
수니다 (숨+니다>); 호흡하다 (수니; 호흡, 수니모; 호흡보조기구)
가배니다 (가배얍다+니다>); 가볍게 처신하다, 경거망동하다 (가베니; 경망스러운 행동)
마고니다 (마고+니다>); 거칠게 행동하다 (마고니; 거친 행동, 무례한 짓거리)
*. -키다의 예;
(상태+) -게 하다, -하게 만들다, (물질+) -화(化)하다, (동작+) 하게 시키다, 예컨대,
가느키다; 가느다랗게 하다, 섬세하게 만들다
가드키다; 가득하게 채우다. 충전(充塡)하다
가루키다; 가루로 만들다, 분쇄하다, 분말화하다
가배키다(가배얍다+키다>); 가볍게 하다, 경감하다
고로키다(고로다+키다); 고르게 하다, 평균적으로 만들다, 평준화하다
고요키다; 조용하게 만들다, (소란을) 진정시키다
까마키다; 검은색으로 변하게 하다, 흑화하다
까스키다; 가스화하다, 기화시키다
나스키다; 치료하다, 치유하다
누룩키다(누룩+키다>); 발효시키다
눅키다(눅다+키다>); 분노 등을 완화시키다.
다사키다; 따뜻하게 하다
단다키다; 단단하게 하다, 견고하게 하다
두레키다; 사회화하다
두루키다; 보편화하다, 일반화하다
마르키다; 마르게 하다, 건조시키다
마모키다; 마모시키다
마조키다; 대비되게 하다, contrast
빠리키다; 가속하다
.....
3. 접두사 개발의 예
위치나 방향을 의미하는 명사나 부사는 동사와 결합하여 새로운 말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접두사는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어야 하므로 어원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사용하기 쉽게 변형하거나 줄여서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앞, 뒤, 위, 아래, 안 등을 이용하여 접두사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자.
아페-; ("앞에"의 소리대로 표기) 앞에, 앞에서, 앞서서, 앞에 있는, pre-
아포-; ("앞으로"의 줄임) 앞으로, 눈앞으로, 현장으로, 세상으로, pro-
디에-; ("뒤에"를 편한 소리로 바꿈), 뒤에, 뒤에서, 뒤에 있는, 후방의, 나중에, re-
디로-; ("뒤로"를 편한 소리로 바꿈) 뒤로, 후방으로, 후퇴하는, retro-
아네-; 안에, 내부에, 내부의, 내부에 있는, 구내의, 안채의, 가내(家內)의, in-, endo-
아노-; ("안으로"의 줄임) 안으로, 내부로, 속으로, 들어, intro-
혼동의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아페-"나 "아포-"는 "아-;로; "디에-"나 디로-"는 "디-"로 더욱 압축될 수 있다. (예; 아디; 앞 뒤> 순서 > 질서)
이러한 접두사의 활용 예를 들어보자
아페-의 예; 아페나; 전조(前兆), 앞서 나타나는 증상, 조짐 /아페노; 우선, preference, 선호
/아페놓다; 우선하다, 선호하다, prefer /아페달다; 제목을 달다 /아페막다; 진로를 방해하다, 진행을 저지하다 /아페부; (앞에 붙이다>) 접두사, prefix /아페손; 선도자, 리더 /아페잡다; 명분으로 내걸다 /아페치; 전자(前者) /아불; 앞길을 밝히는 등불, 선지자(先知者)/
아포-의 예; 아포끌다; 선도하다(先導) /아포나다; 진보하다, 발전하다 /아포내다; 제안하다, propose /아포달; 앞으로 나아갈 땅, frontier /아포밀다; 추진하다, propel /아포지다; 전향적이다/ 아포치다; 진격하다
아네-의 예; 아네담다; 포함하다 /아네놓다; 투입하다, input /아네란; 내란, 반란 /아네몬; 내용물 /아네뭍; 내륙 /아네사; 내부자 /아네쓰다; (글을) 새겨 넣다, inscribe /아네잡다; 내포하다 /아네지다; 내적(內的)이다 /아네키다; 내재화하다, internalize /아네타; 구내용 차량 /아네틀; 내부구조 /아네파다; 내사하다, 자체 조사하다 /아네피나; 내출혈/
아노-의 예; 아노가다; 진입하다 /아노끼다; 삽입하다 /아노마; 내향적 성격 /아노밀다; 억지로 밀어 넣다, (감정 등을) 억제하다 /아노보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다, introspect /아노세다; 외유내강하다 /아노쏘다; 주사하다, inject /아노잡다; 받아들이다, 수용하다 /아노지다; 내향적이다, 내향성이다, introvert /아노파다; 성찰(省察)하다
디에-의 예; 디에나; 후유증, 뒤따라 나타나는 증상 /디에니다; 뒤따라가다, 뒤를 잇다, 후계자가 되다, succeed /디에부; (뒤에 붙이다>) 접미사, suffix /디에손; 후원자, 후견인
디로-의 예; 디로가다; 퇴보하다 /디로내다; 후송하다 /디로닫다; 퇴각하다, 철수하다, 후퇴하다, retreat /디로두다; 연기하다 postpone /디로몰다; 퇴각시키다, 패퇴시키다 defeat /디로밀다; 억지로 물러서게 하다, 억압하다 /디로보다; 돌아보다, 회고하다, review /디로서다; 물러서다,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다 /디로지다; 퇴행적이다,
4. 기본 의미소 개발의 예
단어합성에 자주 사용될 수 있는 의미소(혹은 기본단어)가 부족한 우리말의 현실을 고려하면, 의미소의 개발은 어휘개발 노력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기본단어는 많은 파생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생략과 변형을 통하여 짧고 발음하기 편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단어와 결합하기 쉬운 발음 구조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몇 개의 의미소를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소를 만들 때 매우 중요한 것은 의미의 확장을 통한 화학적인 결합이다. 즉, 합성된 단어의 의미가 구성 원소들의 의미와 관련은 있지만 매우 동떨어지질 수 있어야 제한된 뿌리로부터 다양한 의미의 어휘가 개발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개발을 예시할 수 있다.
두나 (둘+나다(性)>); 이중성(의), 양성(의), dual
두라 (둘+아니다>); 중성(의), 중립(의), neutral
두코 (둘+코(뾰족한 끝)>); 양 끝, 양극 > 양극단 > 극단(極端)
가데 (가(자장자리)+데(장소)>); 변방지역 > 국경지역 > 국경(國境)
게 (거기>) 거기, 그 곳, 그 지방, 그 나라 > 국가 (나라, 달, 벌 등과 병용)
게나 (게+나다; 그 곳에서 난>) 토산(土産)(의), 토착의, 국산의
게사이 (게(국가)+사이>) 국제적(國際的)(인)
데모 (데(장소)+모(方)>) 지방(地方), 국지(局地)
제나 (제+나다>); (제 스스로 나다>) 자연(自然), nature
제니 (제+니다>); (제 스스로 행동하다>) 자율(自律)
제미 (제+미다>); (제 스스로 움직이다>) 자동(自動), (옛말에 "뮈다"가 흔들리다 움직이다를 뜻했던 듯하다. 편한 소리로 바꾸어 "-미다"를 "-움직이다"를 의미하는 접미사로 사용할 수 있겠다)
아디 (아+디); 앞 뒤, 순서 > 질서 > 치안 > 경찰
이러한 의미소를 활용한 합성어의 예를 보자.
두나지다; 이중적이다, /두나키다; 이중성을 띄게 만들다, 이중 시스템으로 만들다
두라니다; 중립적으로 행동하다 /두라지다; 중립적이다 /두라잡다; 중립적 입장을 택하다 /두라키다; 중화시키다, 중립화하다 /두라몬; 중성물질, (산과 알카리가 중화되어 생긴) 염기성 물질 /두라손;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 /두라게; 중립국
두코지다; 극단적이다 /두코나다; (전기의) 극성(極性)을 지니다
가데넘다; 월경하다 /가데손; 국경관련 업무를 보는 공무원/ 가데목; 국경출입 통제소, 국경 세관/ 가데잡다; 국경을 (확)정하다 /가데막다; 국경을 봉쇄하다 /가데보다; 국경을 경비하다, 국경을 지키다 /가데보; 국경 수비 /가데피다; 영토를 확장하다
게나몬; 토산품 /게나손; 토착인, 원주민 /게나지다; 토착적이다 /게나키다; 토착화하다
게사이두레; 국제사회 /게사이지다; 국제적이다 /게사이키다; 국제화하다
데모지다; 국지적이다, 지방적이다 /데모사; 그 지방 주민, 지역인
제나지다; 자연적이다, 천연적이다 /제나롭다; 자연스럽다 /제나키다; 자연스럽게 만들다 /제나몬; 천연물, (인공물이 아니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자연산 /제나매; 자연의 모습, 자연스러운 모습 /제나불; 자연적으로 발생한 화재
제니지다; 자율적이다/ 제니키다; 자율화하다 /제니토라; 자율신경 ("토라"는 앞에서 설명됨), 제니사; 자율적인 사람, 독립적인 사람
제미지다; 자동적이다 /제미키다; 자동화하다 /제미타 (혹은 줄여서 제타); 자동차
아디지다; 질서정연하다 /아디치다; 질서를 허물다, 혼란을 야기하다 /아디키다; 질서 있게 만들다/ 아디보다; 치안을 돌보다 /아디손; 경찰관 / 아디움; 경찰서
지금까지 제시한 논리와 어휘개발 결과에 대해 많은 반박이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예상되는 반박을 열거하고 이에 대해 변론을 겸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1. 합성어를 만드는 방식에서 영어를 본뜬 바가 너무 많다. 주체적이지 못하다.
<설명>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여 이를 나타내는 단어를 만드는 경우도 많지만, 문화의 교류가 활발한 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외래의 문물에 대응하여 새 단어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경우가 더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외국어 어휘(외래어)를 그대로 차용하거나, 아니면 우리 자신의 새로운 번역어를 만드는 것이다.
어느 언어에서도, 새로운 번역어를 만들 때 번역대상인 외래어의 조어방식을 참조하는 것은 항상 도움이 된다. 사실 현대에 우리가 사용하기 시작한 새 한자어의 대부분은 일본의 개화기에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번역어들이다. 그들은 서구 언어의 어휘들을 번역할 수 있는 일본어 어휘를 개발하기 위하여, 서구 언어의 바탕이 된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등까지 음미하고, 그 결과를 그들의 해박한 한자 지식으로 담아 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인들이 제조한 한자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학자들은 proceed에 대해 pro(앞으로>전前)+ceed(나아가다> 진進)으로 보아 前進する라는 번역어를 만들어 내었고 우리는 する만 "하다"로 번역하여 "전진하다"라는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의 상당수에 이미 서구 언어의 조어방식이 이식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는 서로 통하는 면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해당 외래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보고 이 원리에서 아이디어를 빌림으로써 우리 번역어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어휘를 개발하는 서구 언어는 우리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 일부러 외국어의 조어방식과 엇나가려고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새 어휘를 만들 때, 우리 고유어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한자어뿐 아니라 서구 언어의 어휘가 갖는 의미 있는 면을 두루 소화하여 흡수할 권리가 있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나 실행되고 있는 관행이라고 보이며 결코 수치가 아니다.
2. 만들어진 단어들의 발음이 너무 밋밋하여 우리말 같지 않다.
자음으로 끝난 음절에 다시 자음으로 시작하는 음절이 부딪칠 때, 어떤 발음은 거칠게 들린다. (예, 각축, 격돌, 협찬, 합법적, ...) 연속된 중모음도 발음하기 쉬운 편은 아니다. (예, 관광, 과외, ... . 어떤 사람은 "관광"을 "간강"이라고 밖에 읽지 못한다. "과외"는 흔히 "과에" 혹은 "가외"라고 읽힌다) 우리의 한자어가 대부분 우리의 발음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고, 우리의 한자발음이 상당히 많은 경우에 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자어에는 자음충돌이 잦고 발음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리는 한자어 때문에 딱딱한 발음에 능숙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태리어나 스페인어 같이 자음충돌과 중모음이 매우 적은 언어는 우리의 귀에 너무 평이하게 들린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딱딱한 발음은 주로 한자어의 특징이지, 우리 고유어의 특성이 아니다. 우리의 고유어는 말 습관을 통하여 발전하였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 미나리, 고사리, 민들레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려운 자음충돌의 빈도가 한자어에 비하여 훨씬 낮다.
앞에서 제시된 신조어의 예는 주로 자주 사용되리라 예상되는 기본단어를 이용한 합성어들이기 때문에 종성이 없는 음절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고유어의 발음난이도 분포와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떠한 발음 난이도 분포가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간혹 나타나는 힘든 발음은 그 단어의 변별성을 높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너무 발음하기 쉬운 어휘만 가지면 발음 능력이 퇴화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문장의 대부분은 발음하기 편해야 좋다고 생각된다.
3. 의미소의 화학적 결합으로 정해진 합성어의 뜻을 수긍할 수 없다. 예컨대, "아페나"는 선생을 의미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는가?
<설명> 선생(先生)의 한자를 보면 일리 있는 의견이다. 사실 "아페나"에 "선생", "형(兄)", "선배(先輩)" 혹은 "전조(前兆)" 중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도 합법적이다. 문제는 상황이다. 우리는 우선 표현하고 싶은 개념이 있어서 이를 나타내는 단어를 만드는 것이지, 가상적인 특정 의미소의 결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어서 단어를 창작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선생," "형, "선배"라는 단어가 달리 있는 상황에서 전조(前兆)를 어떻게 표현할지를 정하여야 하는 식이다. "전조"의 번역어로서 어떻게 "아페나"가 검토의 대상에 포함되었고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는지는 창의성과 고심의 결과이다. 중요한 점은, "전조"를 "아페나"로 표현하는 것이 그럴 듯한지 여부이지, "아페나"의 뜻이 왜 하필 "전조"냐 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아페나"라는 음성이 "전조"라는 개념에 할당되면, 그 후에 만들어지는 단어는 이 발음을 피하면서 가장 설득력 있는 다른 발음을 택하여야 할 것이다. 이 것이 언어에서 단어가 만들어지는 현실이다.
4. 누가 한 사람에게 우리말의 어휘를 만들어낼 권위를 주었는가? 그리고 왜 이미 단어가 존재하는 개념에 대해서까지 새 단어를 만들어 대는가?
<설명>
한 개인이 필요한 어휘를 모두 개발할 수 는 없는 일이고, 그렇게 개발된 어휘는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필자는 필자가 생각해 낸 어휘들이 그대로 수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일부라도 수용된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지만) 단지 별로 어렵지 않은 방법이 있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개발한 어휘를 예로 제시하였을 뿐이다. 새 방법의 효율성을 입증하는 편한 방법으로서 이미 존재하는 한자어에 상응하는 신조어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한자어를 대체할 새 고유어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개의 한자어로 표현되는 것도 고유어 한 개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즉 한자어의 것을 능가하는 압축력을 가진 조어방식을 고유어에 구현하는 것이다.
<글을 마치고 나서>
언어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서서히 변해 왔고, 어휘의 생성, 변화, 소멸은 수많은 사람들의 언어습관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현대 이스라엘어나 피진어의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현대에는 한 언어가 계획적으로 개발되거나 정비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의 언어도 일본 학자들이 단기간에 계획적으로 만들어 낸 어휘를 대량으로 차용함으로써 지금의 어휘를 갖추게 된 것이다.
특히, 사회변화와 학문의 발전이 빠른 현대에는 새로운 단어의 필요성이 너무 자주 발생하게 되어, 누군가가 만든 단어가 우연에 의해 수용되는 방식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어휘의 생산에 몰두할 조직이나 개인이 필요하게 되었다. 한 가지 가능한 방법은 각 전문분야의 소수 전문가들이 모여 자기 분야에서 필요한 어휘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 전문분야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면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조정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언어정책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는 국어의 경우에는 이러한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필자는 이러한 노력에 일조하고 싶을 뿐이다.
-이 글은 전국국어운동 대학생동문회(ww.hanmal.pe.kr)의 옳은 말씀 글마당에 "우리말이 르네상스를"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